정치

영부인이라는 말로는 부족 이희호 여사 별세···조문 행렬 이어져

오늘의 사건사고 0 100 0 0

영부인이라는 말로는 부족 

이희호 여사 별세···조문 행렬 이어져 


1b85254e1db1152bd5a1053b01fc7e2a_1560239370_4894.jpg


동교동계 막내부터 큰형까지 일제히 빈소 지켜

문희상 "가슴 아프다" 눈물 글썽

1세대 여성 운동가, 여성인권 신장 힘써

지미 카터에 편지 보내 DJ 구명 운동

"평화 통일 기도하겠다" 유언 남겨


“아내를 넘은 정치적 동지”, 

“한국 여성 운동의 선구자”, 

“영원한 동교동의 안주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서 정치 역정을 함께 

걸어온 인사들은 10일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이 여사는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젊은 시절에는 여성운동 1세대로 활약했고,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곁을 지킨 이 여사의 

소천(召天) 소식에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기 위한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 여사의 빈소는 조문이 공식적으로 개시되기도 

전에 속속 모여든 동교동계 인사들로 붐볐다. 

‘동교동계 막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 그리고 김방림 전 의원 등이 

아침부터 빈소를 지켰다. 


조문객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이는 

윤영찬 전 청와대 소통수석이었다. 

오전 10시께 장례식장에 도착한 윤 전 수석은 

이 여사를 떠올리며 “김 전 대통령님을 만나 

평생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함께 고난을 겪고, 

고난을 이기시고 민주주의를 지금까지 끌고 온 

큰 거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빈소를 찾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엄혹한 시절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하며 

그 시절을 극복하신 삶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역시 “이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당에서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평생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신 이 여사님에 저와 한국당은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그동안 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을 위해서 남기셨던 유지를 

저희가 잘 받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해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등 정치권과 각계 인사들의 문상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이 

상주로서 자리를 지킨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낙연 

국무총리와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 

각계 인사들이 보낸 60개 이상의 근조기가 빈소에 도착했다. 


헌화를 위한 단상에는 



1b85254e1db1152bd5a1053b01fc7e2a_1560239370_38.jpg


대통령 당선 시 

대통령 내외가 받는 무궁화대훈장이 놓여 있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1세대 

여성 운동가로 한국 여성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결혼 전에는 독신을 고집하며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당대의 엘리트였다. 


대표적으로는 대한 YWCA연합회 총무를 맡아 

‘축첩자(혼외 배우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섰고, 남녀 차별적 법 조항을 수정하는 데 힘썼다. 


이 여사가 핵심이 된 YWCA의 이런 활동은 1989년 남녀 

차별적 내용을 일부 고친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고 

훗날 호주제 폐지로까지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당사자이기도 하다. 



여성운동에 매진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김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으며 

김 전 대통령의 고난 가득한 정치 역정을 함께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감내했고, 1980년 내란음모 사건 당시에는 국제적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사형을 선고 받은 김 전 대통령에게 이 여사는 편지를 통해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며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 여사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말년에는 한반도 평화 조성에 헌신했다. 

이 여사는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 영부인으로 

동행해 역사적 현장을 지켜봤다. 


특히 보수정부 시절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햇볕정책의 

맥을 이어가고자 노력했다. 

이 여사는 유언을 통해서도 “하늘 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평화 통일을 염원했다.


0 Comments
포토 제목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